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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VS 김포
2 : 1
일시 : 포천종합운동장
장소 : 2017.09.23(토) 15:00
 
    포천2 : 1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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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평2 : 1포천
    화성0 : 0포천
 
 
작성일 : 13-05-29 11:02
‘백혈병’ 오태환 “내가 축구장으로 돌아온 이유는…”[일간스포츠]
 글쓴이 : 축구단
조회 : 32,226  
   http://isplus.joinsmsn.com/article/191/11650191.html?cloc= [8305]


“백혈병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꿈을 포기하지 않겠다.”

4부리그에서 뛰는 축구선수 오태환(29·포천)의 표정은 밝았다.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병상에서 백혈병과 사투를 벌였다. 항암제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졌고, 화장실까지 혼자 걸어가지도 못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K리그 무대에 서는 것이 꿈이다”며 의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다시 축구를 시작했다.

오태환은 지난 16일 연천에서 끝난 제59회 경기체육대회에서 포천시민축구단(챌린저스리그·4부리그)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의 가슴 한 쪽에는 아직도 호스를 꼽았던 자국이 선명하다. 암세포는 다 죽었지만 아직 완치는 아니란다. 2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 판명을 내린다. 오태환은 아직도 한주에 26개의 알약을 먹어야 한다. 그래도 그는 “축구장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촉망 받는 수비수였다. 대신고 3학년 때는 동기생 정조국(29·경찰청)과 함께 전국대회 우승도 일궜다. 하지만 경희대 4학년 때 발목을 다쳤고 ,1년을 날렸다. 프로 드래프트는 신청하지도 못했다. 이때 충주 험멜(당시 실업축구 내셔널리그)이 손을 내밀었다. 충주에서 뛰던 그는 2009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그리고 공익근무요원이 뛸 수 있는 4부리그 팀을 찾았다. 그렇게 포천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포천은 2009년 오태환이 합류하면서 챌린저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주장이었던 오태환은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2010년에는 챌린저스리그 팀으로는 처음으로 FA컵 32강에도 올랐다.

그러나 2011년 백혈병이 오태환의 꿈을 가로막았다. 연천에서 만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백혈병이 걸린 것은 언제 알았나.

"공익을 다녀온 뒤 험멜에 합류했을 때였다. 2012년 2월 초로 기억한다. 훈련을 하는데 쉽게 지쳤다. 안색이 좋지 않고 쉽게 멍이 들더라. 잇몸에 피가 한 번 나면 멈추지 않았다."

-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무시무시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 증상을 찾아봤다. 백혈병이라 하더라.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 항암 치료가 쉽지 않았을텐데.

"처음에는 좌절을 많이 했다. 왜 하필 나여야 했냐고 원망도 했다. 프로에 서는 것이 꿈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더 이상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눈물도 많이 났다. 어머니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혼자 숨어서 눈물을 훔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 무엇이 가장 괴로웠는지.

"프로가 되는 것은 아직도 갖고 있는 꿈이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마지막을 불태워 보겠다고 험멜에 들어갔는데, 또 그런 시련이 오니 마음이 아팠다. 운동을 하고 싶기는 한데 백혈병을 딛고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들었다."

실제로 잉글랜드 애스턴빌라의 주장이었던 스틸리안 페트로프(34)도 급성 백혈병으로 쓰러졌다. 불가리아 국가대표 미드필더였던 그도 복귀를 꿈꿨지만, 결국 올 시즌 은퇴를 선언했다.

- 백혈병 치료는 다른 암보다 치료하는 게 쉽지 않은데.

"가슴에 관을 꼽고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항암치료제를 가슴의 관을 통해 주입한다. 혈액에 암이 자라는데 정맥을 통해 항암제를 주입하더라. 손목 혈관을 통해 맞기도 하는데, 잘못 세어나가면 주변 세포가 궤사한다고 해서…. 혈소판 등을 다 죽였다가 필요한 것만 재생시키는 원리라고 했다. 2012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했다."

- 말만 들어도 고통스럽다. 어떻게 이겨냈는가.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줬다. 포천 구단에서는 암투병 중인 나를 선수로 등록도 해줬다. 항암치료로 머리도 다 빠지고 그랬을 때인데, 운동장을 왔다갔다하게 해주셨다. 축구장과 동료들을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다."

- 다행히 치료가 잘됐다. 그런데 운동을 다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을텐데.

"가족들이 반대도 심했다. 운동을 하다가 그런 병을 얻었는데 왜 또 하냐고 하더라. 축구장에 아들을 내보내기까지 가족들 결심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내 뜻을 이해해 주시고 지원을 많이 해줬다."

- 재활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항암치료를 받고는 74kg까지 빠졌다. 그러다 병원에만 누워있으니 90kg까지 몸이 불었다. 처음에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일반인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경희대 선배 중에 재활 센터를 운영하는 조승무(33) 슬림&스트롱 대표가 도와줬다. 이동근(31) 트레이너는 항상 나를 전담해 관리를 해줬다."



- 축구장에 다시 섰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가.

"솔직히 별 다른 감정이 없었다. 그냥 내 자리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22개월 만에 경기장에 서다보니 어색하긴 했다. 경기력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운동장에 서있는 것 자체는 편했다. 동료들도 많이 걱정했고 주위에서 응원도 많이 해줬다. 9년 전 경기도민체전에서 준우승을 했는데 올해는 우승을 차지했다. 인생에 뜻깊은 데뷔전을 치른 느낌이다."

- 다시 프로에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는데.

"가고 싶다. 솔직히 처음에는 프로선수가 되겠다고 도전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몸이 좋아질지 몰랐다. 선수생활의 마지막 모습을 운동장에서 뛰고 그만두려고 생각했다. 몸을 만들면 만들 수록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조금씩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기더라. 몸이 좋았을 때도 K리그에 도전을 못했는데, 인생 밑바닥을 찍었으니 도전을 해봐야겠다."

- 아직 백혈병이 완치된 것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약을 꾸준히 먹고 있다. 매일 2개 씩 먹는 것이 있고, 1주일에 한 번 12개를 동시에 먹어야 하는 약이 있다. 3달에 보름 동안 먹어야 하는 약도 있고. 계속 먹어줘야 한다. 2년 동안 재발하지 않아야 완치 판정을 해준다. 진짜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만 한다. 또 하고 싶은 축구를 못하고 죽었으면 얼마나 후회스러울까란 생각도 들었다."

- 2012년까지 몸 담았던 험멜은 지금 K리그 챌린지(2부 리그)에 올라가며 프로가 됐는데.

"험멜은 내가 몸이 좋지 않을 때 나를 잘 챙겨준 팀이다. 대학 4학년 때도 몸이 좋지 않았는데 흔쾌히 받아줬다. 그때도 너무 고마웠는데, 백혈병에 걸렸을 때도 구단주인 변석화 회장님이 안부를 물으셨다. 그리고 힘을 내라며 완쾌해서 다시 험멜로 오라고 하셨다. 목표가 다시 생기니까 너무 감사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희망이 생겼고 다시 운동을 한 것이다."

- 변석화 회장도 완쾌한다면 팀에 다시 부를 생각이 있다고 했다.

"더 노력해야 한다. 몸이 좋아져서 험멜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 백혈병을 이겨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프로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백혈병을 딛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 현역 선수로 돌아가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일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 현역으로 돌아가기 까지 엄청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내가 다시 일어선다면 백혈병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지 않겠나."
 
연천=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