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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VS 경주한수원
2 : 0
일시 : 포천종합운동장
장소 : 2017.04.19(수) 15:00
 
    포천2 : 0경주한수원 (1)
    청주시티1 : 1포천
    포천1 : 0춘천
    포천1 : 0이랜드
    양주2 : 3포천
 
 
작성일 : 11-06-02 17:50
패배는 있어도 포기란 없다[주간경향]
 글쓴이 : 축구단
조회 : 22,792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053… [5919]
저녁 7시 30분, 서서히 어두워지는 포천공설운동장에 25명의 축구선수들이 모여들었다. 지난 5월 18일 수원삼성과 FA컵 32강전 경기에서 선전했던 포천시민축구단 선수들이다. 큰 경기를 마친 후지만 토요일 열릴 리그 정규시합을 준비하기 위해 휴식 없이 훈련을 계속하는 것이다. 국내 성인축구는 프로축구리그가 주축을 이루고, 이어 실업팀 위주인 내셔널리그, 그리고 그 밑의 챌린저스리그로 나뉜다. 포천시민축구단은 3부 리그인 챌린저스리그 소속이다. 포천시민축구단 선수들의 평균연령은 26.5세다. 대부분 산업체에서 병역대체근무를 하거나 공익근무를 하고 있다. 군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면서 축구를 계속하고 있다. 때문에 낮에 일하고 밤이 되어야 모여 연습을 한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도 국내 최고 수준의 프로축구팀 수원삼성과 맞붙어 3대 1로 지긴 했지만 비교적 대등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포천시민축구단 선수들이 야간 훈련에 앞서 이수식 감독의 말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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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선수들이 모였으나 패배한 선수는 없다
선수들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나자 운동장 조명이 켜졌다. 사령탑인 이수식 감독은 선수들에게 토요일 맞붙을 팀의 특징과 눈여겨 마크해야 할 주전선수의 플레이를 설명했다. 선수들을 세 팀으로 나눠 세트플레이와 대항경기로 작전을 훈련시켰다.

“챌린저스리그 경기는 어느 리그보다 재미있다. 내셔널리그나 프로축구 감독의 부담은 상상 이상이다. 곧바로 성적을 보여주지 않으면 즉각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챌린저스리그는 그런 부담을 떨치고 뛴다. 때문에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박진감 있는 공격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이수식 감독은 국내 축구선수들의 가장 큰 단점으로 창의력 부족을 지적했다. 어려서부터 감독이 시킨대로만 뛰어온 선수들이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감독은 포천시민축구단의 색깔을 단 한 마디로 정의했다. “우리들은 실패한 선수들이 모였다. 그러나 결코 패배한 선수들은 아니다.” 특히 지난 수원삼성과의 경기를 통해 선수들의 내면에 갇혀 있던 가능성과 창의성이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FA컵 2라운드 최우수선수로 꼽힌 이후선 선수. 그는 29살로 팀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어릴 때부터 꿈은 축구선수. 그러나 꿈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더러는 악몽으로 그를 괴롭혔다. 최고라 자부했던 실력은 성인축구에서 여지없이 벽에 부딪혔다.

이후선 선수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절망을 맛보았다고 했다. “대학 때까지는 축구라는 꿈을 좇아갔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니 꿈은 사라지고 현실의 벽만이 다가왔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도 알게 됐다.” 스피드는 따르지 못했고 플레이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현실의 벽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내셔널리그인 인천코레일 선수로 뛰다가 팀을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했었다.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하는 위기도 있었고 체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선수로서 전후반 풀타임을 소화할 수 없게 되니 축구의 꿈은 자연히 시들해졌다. 더 이상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공익근무로 병역을 마치기 위해 포천으로 왔다. 근무와 동시에 선수로 뛰다보니 몸은 더 피곤해졌고 고된 훈련은 피하고 싶었다. 초기에는 훈련에도 소극적이고 불만도 많았다. 주변에서는 그를 축구를 포기한 선수로 보았다.

(위) 서장원 포천시장이 운동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아래) 선수들이 훈련 후 시민 팬이 보내준 피자를 먹고 있다.

그의 포지션은 주로 후반전 다른 선수 대신 투입되는 조커 역할. 그런 그가 올해 초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포천시민축구단에서 연습에 불참하면 하루 훈련수당인 1만원을 받지 못한다. 동료들과 훈련수당 및 경기수당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불만이었지만, 한 게임 한 게임 승리를 맛보면서 더 큰 바람이 시작됐다.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됐다. 남몰래 체력을 키우는 연습도 하고, 스피드도 높이며 지구력도 길렀다. 리그에서 승리의 경험이 쌓이면서 이대로 축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선 선수는 FA컵 2라운드에서 자신의 출신교인 동국대와 붙어 결승골을 뽑아냈다. “후배들 앞에서 정말 지기 싫었다. 이기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그 직후 감독님을 찾아가 이제는 체력이 됐으니 풀타임을 뛰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운동하는 지금이 행복
감독은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이후선 선수에게 수원삼성과의 경기가 포천시민축구단에 합류한 후 최초로 전후반 풀타임을 뛴 경기가 됐다. “거대한 경기장으로 들어서면서 관객들의 함성을 듣자 내가 축구선수라는 사실이 되살아났다. 남들은 늦은 나이라고 말하지만 한 번 더 도전할 것이다. 어떤 길을 만들어갈지 지금 고민하고 하나하나 준비하고 있다.” 그는 프로선수들이 보기에 보잘 것 없지만 돈을 받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22살의 서보성 선수는 팀의 막내다. 축구명문 서귀포고등학교를 나와 내셔널리그인 미포조선의 선수로 뛰었다. 팀 성적이 부진하자 그를 스카우트한 감독이 경질되며 6개월 만에 팀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몇 달 동안 방황하다 다시 감독을 따라 강원FC에서 뛰었다. 그러나 축구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팀을 그만 두었다. “쉽게 다른 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때 마침 포천팀의 테스트에 합격하여 주전이 될 수 있었다. “군대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한다. 대체복무를 위해 산업체에서 필요한 자격증을 땄다. 운동도 하면서 이제까지 미뤄두었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할 수 있어 좋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포천시민축구단은 그에게 꿈의 요람인 셈이다.

5월 18일 FA컵 축구대회 수원삼성과의 32강전 경기에서 선전한 포천시민축구단 선수들이 경기를 마친 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3부 리그인 챌린저스리그 팀들은 공통적으로 선수 확보의 문제를 겪는다. 우수한 선수를 스카우트할 만한 재원도 명성도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초 급조된 팀의 운영을 맡아 실무와 선수 확보까지 일인다역을 해야 하는 이광덕 본부장은 고민 끝에 묘책을 찾아냈다. 해외에서 선수를 찾아오는 일이었다. 신생팀에다 프로팀과 실업팀에 비하면 보수도 형편없는 현실에 비추어보면 터무니없는 발상과 시도였다. 이 본부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교포 진창수 선수를 영입했다. 그는 포천시민축구단에서 높은 기량을 보이다가 현재 강릉시청의 주전으로 뛰고 있다. 이 본부장은 지금도 전국체전에 출전하는 재외동포팀 선수들을 눈여겨 보고 있다.

그 다음 쓸 수 있는 카드는 축구선수 모두가 고민하는 병역문제의 해결. 구단주인 서장원 포천시장에게 요청하여 포천시 관내의 방산업체들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터전을 만들었다. 선수들이 대체복무를 하며 운동도 계속할 수 있는 당근을 만든 것이다. 때문에 현재 포천시민축구단 선수 대부분은 공익 내지는 산업체 근무자들이다. 어떤 이는 우스갯소리로 포천시민축구단을 ‘제2의 상무팀’이라 부르고 있다.

이광덕 본부장은 축구와는 인연이 먼 사람이었다. 포천 지역신문의 발행인이자 기자로 일하다 축구팀 창단과 운영 실무를 맡게 됐다. “만들던 신문이 좀 특이했다. 지역신문인데도 스포츠기사를 1면에 배치하고 기사의 양도 7할 정도가 스포츠 관련 기사였다. 다른 지역신문들과 확실히 차별화가 되었다.” 그런 인연으로 축구팀의 운영을 맡았다.

자상한 감독, 꼴찌를 3부 리그 우승팀으로
창단 당시 시에서 지원한 예산은 1억원. 지금은 그 3배인 3억원이다. 18평 숙소에서 20명이 지내야 했고 끼니의 절반은 라면으로 때웠다. 첫해 성적 챌린저스리그 꼴찌. 그러나 그 이듬해 우승하는 기적을 보였다. “그때 고생했던 선수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강팀이 될 수 있었다. 선수들이 이곳에서 열심히 기량을 키워 더 좋은 팀으로 스카우트돼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엄한 감독에 비교해 그는 선수들에게 자상한 어머니 같은 존재가 되려 했다. “지금도 다른 팀으로 간 선수들이 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언젠가는 경기장에서나 팀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인간적인 유대감이 더 좋은 팀과 더 실력 있는 선수를 만든다고 믿는다.”

1. 창단이래 팀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이광덕 본부장. 2. 나눔의 집에서 공익근무 중인 주장 오태환 선수. 3. FA 2회전 최우수 선수상을 받은 이후선 선수. 4. 5월 31일 대체복무를 마친 이승태 선수, 축구 지도자 수업과 각종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5. 22세의 서보성 선수는 팀의 막내다.



7시 30분부터 시작한 훈련은 9시가 되자 끝났다. 운동장을 밝힌 조명이 하나둘 꺼지자 이광덕 본부장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팬에게서 피자 몇 판이 배달됐기 때문이다. 수원삼성과의 경기 이후 종종 있는 일이라고 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선수들의 활약을 알게 된 포천시민들이 가끔 통닭을 보내거나 간식거리를 제공하는 일이 생겨났다. 식당에서 선수를 알아보고 대신 계산하는 팬도 생겼다.

간단히 회식을 마치고 10시가 가까워지자 선수들은 짐을 챙겨 바쁘게 숙소로 돌아갔다. 선수들 대부분은 다음날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승태 선수는 아침 6시에 일어난다. 7시 30분까지 출근해 8시부터 근무한다. 그가 일하는 곳은 섬유회사. 무거운 짐을 나르는 출고담당을 맡고 있다.
 
“정말 힘들다. 대체복무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그만둘 수 없다. 주5일 근무하고 저녁에 훈련하고, 토요일에 경기를 뛴다. 보통 1년에 20경기 이상을 뛰고 있다. 어떤 선수들은 35경기까지 뛴다. 낮에 일하면서 운동을 하니 프로선수들보다 몇 배나 힘들다.” 피곤한 일정 때문에 선수 대부분은 휴일이면 모두 잠을 잔다. 가장 하고 싶은 일도 원없이 잠을 자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승태 선수는 5월 31일 대체복무를 모두 마쳤다. 힘든 2년이었지만 축구선수로서 자신을 보다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2년 동안 여러 가지 준비를 많이 했다. 운동하는 틈틈이 지도자 훈련도 받았고 책도 읽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수원삼성과 맞붙으며 축구의 열정이 다시 살아났다.”

축구 향한 열정을 되살린 2년의 시간

선수들에게 창의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는 이수식 감독.

그는 수원삼성 선수 3명을 단독 드리블로 제쳤다. 결국 네 번째 선수에게 걸려 프리킥을 유도해냈지만 골을 넣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 전에는 나와 프로선수 사이에 너무나 큰 격차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경기를 통해서 그 격차가 한층 낮아졌다. 내가 한 발만 더 높이 뛰면 충분히 넘을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더 해볼 작정이다.”

이전까지 그는 불신과 불만이 적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드래프트 경쟁에서 밀린 것이나, 팀 선수 선발에서 밀려난 것이 자신의 실력 탓보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한 것이란 원망이 있었다. “챌린저스리그에서 뛰면서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게 됐다. 신체적인 약점이 분명히 있다. 기술과 체력을 보강해서 한 번 더 싸워보겠다.”

수원삼성과의 경기 후 그는 많은 전화와 메시지를 받았다. 그 중에서 친구로부터 온 ‘너 아직도 축구하고 있구나’라는 문자는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스스로 잊혀진 선수라는 자각이 밀려왔다. “제대했으니 시간이 없어 모자랐던 웨이트트레이닝과 개인훈련을 더 할 것이다. 늦었다고 말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더 값진 시간을 만들어 가겠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은 경기를 직접 보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왔다.

선수 중 소수만이 제대 후의 진로가 결정돼 있다. 주장을 맡은 오태환 선수는 3년 전 뛰던 충주험멜축구단으로 복귀가 정해졌다. 가을에 공익근무를 마치면 포천을 떠날 예정이다. “경기가 끝나고 수원삼성 선수들과 악수를 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선수들과 나 사이에 있는 종이 한 장 차이, 그 차이를 생각하니 울컥했다.”

포천으로 오겠다는 결정을 했을 때 주변에서 모두 만류했다. 꼴찌 팀이 아닌 더 좋은 팀으로 가라는 조언들이 많았다.

“노인복지기관인 나눔의 집에서 공익근무를 하고 있다. 포천에서 축구를 계속한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은 경험이 됐다. 이렇게 움직일 수 있기에 더 열심히 운동하고 일해야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오태환 선수는 65경기 연속 출장의 대기록을 갖고 있다. 주변에서는 그를 출장기록만큼 성실한 선수라 평가한다. “걱정거리가 없다면 끝까지 축구를 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꿈이다. 지난 경기를 통해 그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지만 축구선수로서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끝까지 해볼 것이다.”

이수식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저 선수들과 함께 세상에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경기를 하고 싶다.”

정치와 경제가 하지 못하는 일을 스포츠는 해낸다. 사람들의 마음에 꿈을 심고 절망 앞에서 또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나 꿈을 향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현실의 벽 앞에서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마음 속 불씨를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경기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사람들을 사로잡는다. 포천시민축구단의 도전에 세상의 갈채가 쏟아진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꿈을 잃지 않은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